가업으로

1997년 첫해 7독으로 시작한 항아리가 800여개가 됐다. 해마다 조금씩 늘리며 행복과 꿈도 그 만큼 늘었다.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가업을 운운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얘기하려고 한다. 우리 부부가 부모님 뒤를 이어 장류 사업을 계속하여야겠다고 결정하게 된 근원적 이유는 이 사업이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002년 겨울 잠실 롯데 백화점에 장류 제조자 직판 행사를 하실 적에 부모님이 지난 이야기를 꺼내셨다. 밀감 농사를 하다 82년부터 양돈, 바나나를 거치며 난초 조직배양 및 시설재배까지 10여년간의 사업에 차례로 실패하여 1994년 쓰러져서 반신마비, 언어장애 현상을 아버지, 어머니가 차례로 겪다 가까스로 호전될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두 분은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고자 하셨다 했다. 그러나, 그간의 신앙생활을 떠올려 자리를 떨고 일어나 난초 재고 처분을 위해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생산자 직판 행사를 시작하였고, 그 덕에 된장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 된장 사업으로 장기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부모님이 이 장류 사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간의 사업 실패를 딛고 일어서겠다는 강건한 의지를 가지고 계신 것이 역력해 보였다. 환갑이 넘으신 부모님이 실패를 극복하며 일어서시는 모습이 나에게 큰 반향과 행복감을 주었다.

난초 조직배양 및 시설 재배를 그만 두기로 하고 1995년 2월부터 난초 재고 처분을 위해 대도시 유명 백화점과 각종 행사장을 전전하시던 부모님은 1997년에 된장 사업을 결심하셨다. 그간 전국을 돌며 특판 행사를 하시며 읽은 시대 흐름과 1997년 봄에 우리 농장을 직접 방문하였다가 하루 밤을 묵으며 어머니의 된장 맛을 본 현대백화점 압구정동 본점 식품부 구매담당자의 적극적인 격려가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다.

이 담당자는 당시 부모님이 하시는 난초 생산자 직판 행사가 인기가 높아지자 백화점 고객 보호 차원에서 부모님이 진짜 난초 생산자인지를 확인하고자 현재 서귀포시 신효동 감귤 박물관 위에 자리한 우리 농장을 서울에서 내려와 직접 방문하였다가 하루 밤을 우리 농장에서 묵으면서 부모님이 장류 사업을 시작 하시도록 독려하였다고 한다.

직접 부모님의 변화를 보고 느끼면서, 힘들었던 과정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님의 긍정적 변화를 꼭 지켜드리고 소중한 성공을 이루시도록 도와 드리고 싶었다. 그 것은 우리 모든 가족에게 큰 의미가 되는 일 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2000년부터 주변 분들에게 부모님이 만드신 된장을 전하면서 그동안 들었던 부모님의 된장 제품에 대한 칭찬과 감사의 말도 내가 더 적극적으로 부모님 사업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요소가 됐다.

2000년 겨울, 당시 회사의 중요한 고객으로 동양시스템즈 네크워크팀 부장으로 계시던 정성록 부장님이 부모님 제품에 대해 하신 평과 이후 여러분들의 제품평이 나의 결심을 부추겼다. 정성록 부장님은 내가 그냥 선물로 건넨 된장을 집에서 들기 시작하며 아침밥을 안 먹던 자식들이 된장국을 먹으려고 아침밥을 먹고, 된장국을 먹으려고 저녁과 주말에 집에서 식사하려고 하여 자식들과 식사하는 기회가 많아지는 행복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너무 좋아 하셨다.

또, 연로하신 모친도 옛날 맛의 좋은 된장이라고 좋아하신다며 어떻게 너희 집 된장은 애들과 노인이 다 같이 좋아 하냐며 희한하다고 하셨다. 다른 된장은 노인이 좋아하면 애들이 싫어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애들과 노인이 다 만족한다는 고객들이 수년간 계속 늘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이 만드신 제품이 품질 경쟁력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2002년과 2003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우리 가족은 전국을 돌며 장류 사업 및 농촌의 변화를 살폈다. 이 때 이 분야의 여러 선배들을 만나 뵀다. 그 중, 경기도 양평 수진원의 정두화 할아버지를 만나서는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어린 애들을 달고 찾아 간 우리 부부에게 그 분은 자신의 지난 과정을 소개하며 된장 사업이 만만한 것이 아니니 절대 사업으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그러시다 부모님의 상황 등을 고려한 우리들의 의지를 보시고는 여러 시간에 걸쳐 당부의 말씀을 해주셨다. 쉽게 돈을 벌지 못할 것이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씀도 해주시며 그분의 생각을 담은 수건 2장을 선물로 주셨다. 존경 받아 마땅한 이분의 삶도 우리 부부가 가업승계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직장 내 권한솔 상무님의 꾸준한 권고와 격려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3년 여름 집사람에게 가업승계를 위해 부모님을 도와주며 기술 전수 받을 것을 부탁하였다. 결혼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을 내 부모님의 특판 행사 돕기를 마지않던 아내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번에도 고맙게 순순히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내려가 부모님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5년간 서울과 제주로 가족이 따로 떨어져 살다 2008년 봄에 나 역시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을 정돈하고 제주도로 내려와 같이 일을 진행하고 있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아 중도 포기의 유혹도 있으나 장기적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2대가 힘을 합쳐 노력하고 있다. 귀향 초기에는 빠른 성공을 바래기도 하였으나 본래 정상적인 영업주기가 3년 가까운 이 사업의 속성상 빠른 성공은 언감생심이었다.

지금은 젊은 사람의 식견과 관리상의 도움을 드리며 늘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 『식품은 정직하게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면 다 된다』를 되새기며 미래를 꿈꾸고 있다. 지금 당장 저희 제품의 품질이 최고가 아니라 하더라도, 계속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정직하게 만들어 내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노력은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우리 제주도에도, 우리 나라에도, 전 세계에도 의미 있는 것이어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부모님 역시 우리 부부의 합세로 어떨 때는 더 힘을 내시고, 어떨 때는 더 두려워하시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가 합세함으로 이 일이 더욱 의미 있어 졌다며 더욱 책임감 있게 사업을 전개하시고 계신다.

흔들림 없이 이 길을 올 곧게 가 관심과 지원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청정촌 아들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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